줄거리
주인공 ‘병일’은 공장 노동자로서 살아간다. 그는 공장에 오랜 시간 근무했음에도 고용주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칙칙한 거리를 매일같이 거닌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도중, 그는 우연히 사진관에 들어서게 된다. 사진사는 그에게 술을 권하며 그 나름의 인생관을 설교한다. 사진사는 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사진사의 것과는 다르다. 사진사와 교류하며 그는 삶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책 읽기를 중단하며 현실에서 도피한다.
사진사는 신문사 지정 사진관을 운영하는 선배의 건강이 위독함을 언급하며 이를 신문사 지정 사진관의 자리를 꿰찰 기회로 여기지만 역설적으로 사진사는 선배보다 먼저 세상을 뜨게 된다. 사진사의 죽음은 그의 성찰을 도중에 완료시키고, 그가 주변과의 교류를 그만두고 독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게 한다.
반영론적 분석
〈비오는 길〉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서, 작품 곳곳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 ‘병일’의 집 근처에 위치한 ‘성’은 지금의 것이 아닌 ‘옛’ 것으로서. 점차 무너지고 있다.
그는 ‘옛 성문 누각’에 대해 “오랜 역사의 혼이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끼나, ‘성’은 곧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이다. 이는 당시 조선이 겪었던 사회적 변화와, 말하자면 ‘역사의 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당대 조선인들이 느꼈을지 모르는 허망하고 외로운 감정은 ‘병일’의 심리 서술로서 표상된다. “엄숙한 비판의 힘으로 변하여 병일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 듯”한 “산문적 현실 속”의 리듬은 삶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던 당대 조선인들이 가졌을 보편적 인식인 것이다.
핵심 문장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일생을 살 수 있는가 하는, 즉 사람에게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것을 알아보려고 한 적 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학도 할 수 없이 된 병약한 몸과 2년래로 주인에게 모욕을 받고 있는 나의 인격의 울분한 반항이 - 말하자면 모두 자기네 일에 분 망한 세상에서 나도 내 생활을 위하여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것이 나의 독서요.
최명익. (1936). 비 오는 길.
‘병일’의 고민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끝에 독서에 몰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현실에 대한 세속적 욕구가 없는 듯 보임에도 독서를 통한 내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2023년 3월 25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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