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까우며, 도시 생활자들의 가치관과 정서가 반영된 도시형 팝. 시티 팝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당시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용어가 대중화된 시점은 2010년대 이후 인터넷을 통해 재조명 받았을 때이다.
I. 시티 팝의 '감성'
버블경제 시기, 젊은 중산층들은 여가를 중시하는 여유로운 생활양식을 가지게 되었다. 시티 팝은 — 도시의 화려한 밤 문화와 해안도로를 따르는 드라이브, 리조트에서의 서핑과 쇼핑과 같은 — 감성을 포착하고 재현했다. 시티 팝은 아시아적 도시 감성이라 부를만한 시대적 향취를 만들어냈으나, 버블 경제가 붕괴한 1980년대 후반, 시티 팝은 ‘현실감이 없는’ 음악으로 치부되었다. 여유로운 생활 양식이 사라지면서, 여유와 낭만, 감성을 대표하던 음악을 더는 즐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1980년대 시티 팝의 선구자. 활동 초기에는 도쿄 등 대도시권에서만 인기를 누렸지만, 1980년 CM송 〈RIDE ON TIME〉은 전국적으로 히트했고 이 곡은 시티 팝의 효시로 불리며 시티 팝 음악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이끌었다.
워크맨의 등장과 카오디오의 발전으로, 야외에서 음악을 들으며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나타났다. 따라서 타츠로는 이 앨범을 리조트와 휴양 감각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이후 시티 팝 앨범 표지에 빈번히 등장하는 도시와 해변이라는 이미지는 시티 팝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시티 팝은 세련되면서도 속물적인 도시 생활을 예찬하며 당시의 도시 생활자와 도시 생활을 꿈꾸는 젊은 리스너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이다. 한편, 지금의 시티 팝 유행 현상의 특징은 자국 일본보다는 일본 밖에서의 반응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찾던 미국의 DJ들이 시초가 된 시티 팝의 유행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국 등의 아시아 국가를 거쳐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우식(2022)는 지금의 리스너들이 시티 팝을 "80년대 일본이 누린 풍요로움, 여유, 낭만, 세련됨과 같은 키워드에 매칭"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2020년대의 감수성으로는 실감하기 어려운 낯선 것들, 즉 시티 팝이 보여 주었던 당시 일본 도시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버블 경제 속 소비지상주의의 노스탤지어를 지금의 관점에서 향유한다는 것이다.
II. 뉴트로: 역사적 노스탤지어
시티 팝이 레트로의 일종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레트로의 기반은 개별적 경험과 그에 따른 기억으로 형성된 개인적 노스탤지어에 있으므로 자신만의 경험 정도와 내용에 영향을 받는 자기참조적(self-referencing) 성격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시티 팝을 유행시키고 향유하는 것은 80년대를 경험한 중년층이 아니라, 그 이후에 출생한 10대, 20대가 주축이므로, 레트로와는 근원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과거를 재현하는 레트로와는 달리, 뉴트로는 과거를 현재화한다. 뉴트로의 동력은 사회적·역사적 기록을 통해 형성된 집단적 경험이다. 즉, 자신이 태어나 기전의 시대 및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상상 그리고 타인과의 공감에 기반을 둔 역사적 노스탤지어가 근원이 된다. 개인의 기억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상상력의 도약이 필요하다. 이는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이며, 시티 팝은 간접 경험을 통해 학습한 80년대의 ‘학습된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의 향취를 느끼는 뉴트로이다.
유튜브의 시티 팝 영상이나 시티 팝 앨범 표지는 도시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정 컷을 시각적 이미지로 활용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주민재(2022)는 "현재 유튜브를 통해 향유되는 시티 팝은 향유자들에게 단지 듣는 음악에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짧게 반복되는 방식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노래의 감성을 극대화하는 콘텐츠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연구자들은 시티 팝의 유행을, 낯선 과거의 향취를 즐기는 노스탤지어, 즉 세련되고 도시적인 음악적 감성에 의한 유흥의 일종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적 기대를 저버린 젊은 세대들의 현실 도피, 경제 성장과 함께 미래를 기약하던 80년대의 낭만적 감성에 대한 열망이야말로 젊은 세대가 시티 팝을 유행시키는 이유는 아닐까.
참고문헌
김문선 & 홍성규. (2023). 1980년대 일본 시티팝의 특성 고찰 - 록, 포크 음악과 시티팝과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 문화와 융합, 45(11), 1239-1252.
주민재. (2022).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 재의미화의 관계 - 소환된 시티팝과 뉴트로 현상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73), 69-97.
정우식. (2022). 시티팝의 형성과정과 21세기 시티팝의 유행 현상에 관한 고찰 - 국내 시티팝 매개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29), 231-306.
2024년 3월 31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시인의 사회 비평 (1) | 2024.11.20 |
---|---|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러외교 (1) | 2024.08.15 |
수시 제도 속 과잉 경쟁과 반목, 폐지만이 방법 (0) | 2024.08.05 |
Is Social Media a Waste of Life? (0) | 2023.09.11 |
자원이 만들어준, 이제 다시 자원을 이끄는 힘 (1) | 2023.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