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노리고 있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시와 수시, 두 가지로 나뉜다. 이중 수시 제도(이하 수시)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야기했다. 학생들이 고등학교 생활에 충실하게 임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다양성의 창의성을 평가하고자 한 것이 수시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의는 상대적으로 대입에 도움이 되는 부문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가장 주요하게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를 비롯한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활동이다. 일례로, 봉사활동 시간이 대입에 미반영됨이 공표되자마자 학교는 우선적으로 봉사시간 부여 활동을 축소했고, 학생들이 사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또한, 대회 및 수상 실적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음과 동시에 수많은 교내 대회가 사라지고 축소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내신 성적과 대입에 반영되는 일부 활동에 대한 편중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평가하는 데 방해가 된다. 정시는 단 한순간의 시험을 통해 대입 성적이 결정되고, 이것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간과한다는 지적에 따라 수시가 도입되었다. 즉, 일괄적인 시험은 다양성과 창의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전제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수시는 그 시험에 대한 편중이 수능 시험에서 내신 시험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그렇게 수시는 여러 번에 걸친 시험을 통해 대입 성적이 결정되고, 이것은 같은 논리에 따라 다양성과 창의성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활동에 대한 집중 또한 사실은 공허한 공전에 불과하다. 앞선 주장에 흔히 제기되는 반론인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활동과 수행평가 또한 공정성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린 채 획일화되고, 때로는 유명무실화 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시는 그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학교의 학생들 간의 경쟁이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정시의 경우 학생들은 전국의 학생들과 경쟁한다. 상대평가에 있어서 한 학생의 성적은 함께 수능을 치르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의 성적이 한 데 모인 가운데 정해지며, 그중 한두 명, 나아가 수백여 명의 학생들의 성적은 수능 성적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따라서 정시에 있어서 한 학생의 경쟁 상대는 일부의 수백 명이 아니라, 전체의 수십만 명이 된다. 그런데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수는 수백여 명에 불과하다. 결국, 학생들은 정시에서 같은 학교 학생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반면에, 수시에서 학생들은 같은 학년 수백여 명의 성적에 의해 자신의 성적이 결정된다. 그중 한두 명이라도 한 학생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크며, 결과적으로 같은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각각의 경쟁자가 된다. 즉, 수시에서 학생들은 같은 반 학생들, 또 같은 학교 학생들과 경쟁한다. 또한, 최종적으로 대학의 평가에 있어서 각 학생들의 경쟁 상대는 같은 모집 단위에 지원한 모든 학생들이 되지만, 그 이전에 평가에 반영되는 내신 성적은 한 학교 학생들 간의 경쟁의 결과인 것이고, 학교 생활 전반을 평가한다는 학교생활기록부 종합 전형도 내신 성적의 영향이 지배적이기에 이를 거스르지 못한다.
결국, 정시에서 학생들은 같은 학교 학생들과 경쟁하지 않지만, 수시에서는 경쟁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경쟁할 때 서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반목하기 쉽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피구 대항전 따위를 할 때 학생들이 크게 흥분하고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하는 것은 흔한 예시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그러한 피구 대항전이 그다지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 고등학교 교실에서 그런 반목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내신 성적이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자명하다. 즉, 중요한 것이 걸려 있을 때 그를 향한 경쟁은 반목을 이끌어내기 쉬우며, 내신 성적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내신 성적에 대한 경쟁은 반목을 이끌어내기 쉽다. 그런데 수시에서는 내신 성적을 향한 경쟁이 이루어지므로, 수시는 학생들 간의 반목을 이끌어 낸다.
또한 그러한 반목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배척한다. 창의성과 다양성은 흔히 포용적인 환경에서 자라난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믿어주며, 때로는 누군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힘을 모아 도전할 때, 학생들은 과감히 자신의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반목이 빈번한 환경은 전혀 포용적이지 못하다. 포용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학생들은 위축되고 창의성과 도전 정신은 모습을 감춘다. 즉, 수시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배척하고, 이는 역시 그 본래 취지에 반한다.
취지에 반하는 제도는 개선되거나, 그렇지 못할 때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시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평가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내신 성적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경쟁으로 인한 반목을 낳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간과할뿐더러 배척하게 되었다. 즉, 수시는 그 본래적 취지에 반하기에 개선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시는 그 근본적 한계로 인해 개선하기 어렵다. 상대 평가가 존속하는 한 학생들 간의 경쟁과 반목을 막을 수는 없는데, 변별력과 공정성의 문제 아래서 상대 평가는 존속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은 그 구분과 기준의 모호함 탓에 평가 불능의 대상이다. 즉, 평가를 위한 수시는 개선할 수 없으며,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박종환. (2023. 12. 27.). 수능서 '심화수학' 빠지고, 내신은 '5등급제'로…'2028 대입개편안' 확정.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6069451
박형수. (2018. 05. 10.). [대입, 넌 누구냐]수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09752#home
2024년 5월 19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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