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학적 부정성이 해체되며 과거의 규율사회는 긍정사회로, 또 과잉긍정으로 특징되는 피로사회, 다시 타자의 모호함에 대한 폭력으로 획일화를 이끄는 투명사회이자 전시사회로 변모했다. 불명확과 불투명에서 나오는 놀이의 상상력은 긍정성 속에서 사라지고, 자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치유적 피로는 소진적 피로로 대체된다. 한편, 완전한 파악의 불능성과 타자의 비밀을 인정할 때 모호함의 자제력은 보존된다. 니체의 가면은 특수자의 심오한 정신, 즉 벤야민이 말한 아름다움을 동일성으로부터 보호한다. 또한, 타자와 거리를 둬야 하듯이 스스로와도 거리를 둬야 한다. 타자로부터 특수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동일성을 체험할 뿐인 나르시시스트는 자신과의 무한한 친밀성에 빠지고, 까발려진 내면의 아름다움은 제의가치를 상실한다.
투명사회는 모든 것을 까발리고 하나로 규정하는, 시인이 없는 사회다. 무결한 동일화를 이끄는 방사선의 사회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투명성이 아니라 모호한, 윤리적 거리를 동반하는 신뢰다.
아감벤의 가면은 폭력적이다. 특수자에게 동일자의 가면을 씌우거나, 특수자의 가면을 벗겨내 특수성을 제거한다. 니체의 가면은 이와 달리 숭고하기에 스스로 전시가치를 갖지 않는다. 아감벤의 가면은 말을 하지만 니체의 가면은 침묵한다. 특수성을 까발리려는 동일자의 폭력과 가상의 형식·형상을 가장하는 벌거벗음은 전시가치만을 지닌다. 투명사회는 비효율의 거리를 지우고 제의가치를 전시가치로 변환한다. 윤리적 자타의 거리 속 타자에의 동화, 이 특수성의 경험은 아도르노적 미메시스로 변주되어 제의가치를 지킨다.
아름다운 특수자의 내면은 불투명한 모호함으로 간직되거나, 겸허하게 드러나 숭고해진다. 이는 머뭇거리는 거리두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투명사회는 타자는 물론 자신과의 거리조차 소멸시킨다. 거리 없는 자아는 기만적 자유에서 소진되어 버린다. 거리두기의 윤리학은 긍정성의 쇄도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할, 자타의 특수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자 배려, 신뢰인 것이다.
2023년 10월 30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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