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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편견이라는 이름의 뇌 속 서랍장...낯선 '그들'이 익숙한 '우리'가 되도록

© YES24 Corp.

뇌과학자 장동선은 인간의 기억 형성과 인출을 서랍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의 뇌는 태어난 직후부터 서랍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각각의 분류 기준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서랍장 중 하나에 넣는다. 하지만 그 분류가 항상 정확할 필요는 없다. 효율적이고 빠른 정보 처리를 위해 뇌는 정보를 어림잡아 판단한다. 분류는 곧바로 이루어지고, 그 대상이 사람일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첫인상을 즉시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분류 작업은 정확하지 않기에, 곧 편향되고 편견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편견이라는 이름의 서랍장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낯선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나이가 적을 수록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성장 중인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서랍장을 만들어낸다.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가 습득되면 뇌는 주저없이 그것을 위한 새로운 분류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곧 그 부류의 정보들은 익숙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뇌의 유연성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어진다. 이미 충분히 성장했을 때 뇌는 새로운 서랍장을 만드는 것을 꺼린다. 새로운 정보는 그저 이전에 이미 만들어 둔 서랍에 끼워 넣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나의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편애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경계한다. 사람들의 뇌는 첫인상을 형성할 때, 상대방을 '우리 편' 혹은 '네 편'으로 분류된 서랍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외국인은 보통 낯선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외국인을 자주 접한다. 우리는 그들을 만난 적이 없더라도 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겉모습을 통해 나름대로의 서랍을 만들어 왔다. 이를테면, 흑인과 백인과 같은 인종의 분류나 미국인인지 독일인인지와 같은 국적의 분류이다. 

 

그러나 미디어 속의 정보는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 흑인들은 자선단체 광고에서 굶주리고 있고, 백인들은 독일제 자동차를 타고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곧 뇌는 흑인이라는 서랍장에 빈곤의 이미지를, 백인이라는 서랍장에 부유의 이미지를 함께 넣는다. 언젠가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을 만나면, 뇌는 그를 곧 흑인으로 분류하고 빈곤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실리콘밸리의 기술자인지 보스턴의 노숙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뇌는 이미 그에 대한 분류와 판단을 마쳤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이렇게 생겨난다.

 

한 번 편견의 서랍장이 만들어지면, 뒤따르는 편견은 의식적으로 통제하거나 거스를 수 없다. 새로운 서랍장을 만들거나, 기존의 서랍장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성장하는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서랍장을 만들어내고 비교적 유연하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성장하는 뇌에 있다. 성장기의 뇌에 공평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뇌는 더욱 공평한 서랍장을 만든다.

 

그러나 무엇이 공평한 것인가? 실제로 세상에는 부유한 흑인보다 부유한 백인이 많이 살고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에 비해 높다. 미디어에서 이를 억지로 교정하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따라서 사람들의 뇌가 흑인을 비교적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로 분류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통계적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나 거리낌과 같은 것들을 느끼는 것은 문제가 된다. 뇌의 편향되고 부정확한 분류 체계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평상시에 만나는 흑인들을 특별히 백인에 비해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사람들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도덕적으로도 그래서는 안 된다. 정보를 조작할 수 없다면, 과연 해결책은 무엇인가?

 

포용하는 뇌 만들기

이제 편견이라는 서랍장에 '익숙함'을 넣을 차례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이는 편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 때 뇌 속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각각 흑인과 백인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편도체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한 실험이 있었다. 백인들은 흑인의 사진을 볼 때 편도체가 더 강하게 활성화되었고, 흑인들의 편도체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저명한 흑인 미국인들의 사진을 볼 때는 인종에 관계없이 편도체에 신호가 도달하지 않았다. 즉, 뇌는 흑인들을 '불안한 사람들'로 분류했음에도 익숙한 흑인들은 확실히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한 흑인을 접한 경우에도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외국인은 낯선 존재이다. 우리는 외국인들에 대한 정보를 단편적으로 저장하기 쉽다. 아랍인을 보고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동남아인을 보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흑인을 보고 슬럼가의 갱스터를 연상하는 것은 단편적이고 부족한 정보에서 기인한 최소한의 분류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우리 편'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들은 불안하고, 따라서 경계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이러한 편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차별 금지에 대한 시민 의식이 강화되고 그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도 잦아졌다. 하지만 그저 '차별을 하면 안 된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우리의 '명시적 편견'을 일깨우는 데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무의식 중에 내재되어 있는 ‘암묵적 편견’을 깨뜨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앞선 실험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그들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여기서 '그들'은 내가 속한 집단과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다. 편견을 타파하려면 '네 편'이자 낯선 그들이 익숙한 '우리 편'이 되어야 한다. 각 개인들이 편견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은 물론, 사회도 개인들이 그들을 접하고 그들과 교류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특히 어려서부터 그들에게 익숙해진다면, 편견이라는 서랍장은 더욱 포용적이고 유연해질 것이다. 결국 낯선 '그들'이 익숙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차별 금지 담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참고 문헌

 

김승섭. (2019년 12월 28일). 미국의 흑인 범죄율은 무엇을 말하는가. 시사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01

 

장동선. (2017).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염정용, 역). 아르테. (원본 출판 2016년)

 

Crime Data Explorer. (2021). Crime Data.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https://cde.ucr.cjis.gov/LATEST/webapp/#/pages/explorer/crime/crime-trend

 

2023년 6월 17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