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보여준다. 엄마와 시적 화자의 간단한 대화체로 구성하여 시적 화자의 시점에서 사춘기를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열세 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1연과 하나의 행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2연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1연에서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상이 전개되고 있고 2연에서는 독자에 대한 화자의 물음으로 끝맺음된다.
엄마 말이 안 들리니? 들려요
너 요새 무슨 일 있지? 없어요
너 요새 누구랑 노니? 그냥 놀아요
너 요새 무슨 생각 하니? 아무 생각 안 해요
쉬는 날 식구들끼리 놀러 갈까? 싫어요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뭐가요
엄마라 말하기 싫어? 고개만 끄덕끄덕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제발 신경 끄고 내버려 두라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엄마든 아빠든 다 귀찮아서
방문도 틱 잠가 버린다
넌 안 그러니?
박성우. 사춘기인가?. 2010.
시행 분석
1행에서 7행까지는 엄마와 화자 사이의 대화가 나타나 있다. 물음표로 맺음되는 엄마의 질문에 반응하는 화자의 대답이 연이어지며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대화를 직접 엿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일정한 형식이 즉각적이고 생생하며, 통통 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한편, 엄마의 질문은 마치 추가적인 꼬리질문을 유도하여 연속적인 대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듯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4행의 ‘너 요새 무슨 생각하니?’에서 보이듯이, 엄마의 질문에는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어 대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화자는 엄마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 대신에 무성의한 단답을 던지며 대화의 지속을 차단한다. 이는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에게서 흔히 기대할 수 있는 반응으로, 제목에서 ‘사춘기’라는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손쉽게 화자가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국 5행과 6행의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엄마라 말하기 싫어?’에서 나타나듯이, 화자의 무심한 대답에 인내의 한계를 느낀 엄마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자 화자는 ‘고개만 끄덕끄덕’,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엄마가 속해 있는 공간을 벗어나 방으로 들어가며 엄마와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다. 이 또한, 사춘기 자녀가 있는 엄마가 자녀와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는, 그러곤 완전한 대화의 단절이 나타나는 모습을 현실성 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8행부터 13행까지는 화자의 심경과 그에 걸맞는 행동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9행의 ‘내 방’과 13행의 ‘방문’은 화자와 엄마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 방’은 엄마와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공간이며, ‘방문’은 엄마와 아빠와의 접촉을 단절시키는 도구이다. 10행과 12행에서 화자의 심경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데, ‘신경 끄고 내버려 두라고’, ‘다 귀찮아서’와 같은 구절에서 화자가 엄마와 아빠에게서 벗어나 정신적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화자의 독립심이 ‘내 방’과 ‘방문’을 통하여 엄마와 아빠와의 단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비교적 긴 분량의 1연이 끝나고 ‘넌 안 그러니?’라는 짧은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2연이 이어진다. 1연이 연속적인 구성으로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구성된 반면 2연은 1연의 묘사에서 한발짝 벗어나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1연과 2연의 분리는 각 연의 내용상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물론, ‘넌 안 그러니?’라는 문장을 강조하고 있다. 홀로 떨어져 있는 마지막 행은 가장 강렬하게 눈에 들어올 뿐더러, 앞서 보여진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달리 독자에게 충분한 생각의 시간을 제공해 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주제 의식
결국 시의 핵심은 마지막 행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행에서는 단지 사춘기 청소년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만, 마지막 행의 독자를 향한 질문은 시의 주제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독자는 1연에서 화자의 모습을 단순히 엿듣는 위치에서 관망하게 된다. 즉, 시의 전개와는 완전히 분리된 제4의 벽 너머에서 화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독자를 향한 질문은 제4의 벽을 넘어 독자를 시의 한가운데로 불러낸다. 독자의 위치를 구경꾼에서 당사자로 이동시키며 강렬한 여운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성찰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는 사춘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활용하여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시의 주제 의식, 즉 시인이 의도한 독자의 성찰은 바로 단절이다. 화자와 엄마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대화의 단절, 시어 ‘내 방’과 ‘방문’에서 상징되는 공간의 단절이다. 이는 이 시의 소재와 연관되어 사춘기를 겪고 있거나, 사춘기를 막 지난 청소년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청소년 독자의 시각에서 보아, 이 시에서는 1연의 세심한 묘사를 통해 공감이 선행된다. 화자의 모습에서처럼 극단적인 단절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경험은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시에는 ‘방문’을 ‘틱 잠가’버림으로써 공간의 단절을 단정적으로 묘사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신만의 공간을 추구하고자 하고, 이에 대한 부모의 침범을 거부하는 행위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을 것이며, 화자는 ‘방문’을 잠그는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후 2연에 다다랐을 때, 공감은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 시는 청소년 화자의 관점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엄마와 화자의 대화를 엿듣는 독자는 제3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독자는 시인의 묘사를 통해 엄마의 입장을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독자는 스스로가 부모에게 행해왔던 단절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를 단지 부모와 자식 간의 단절에만 결부시킬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단절은 인간관계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으며 그 관계와 형식은 제각각이다. 이 시는 사춘기 자녀가 행하는 단절을 대표로 삼아 인간관계의 모든 단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모든 독자에게 단절의 대상의 입장을 헤아릴 기회를 제공한다. 공간적 단절뿐만 아니라 각 계층과 개인 간의 사상적, 정신적 단절이 극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이 시는 메시지 하나를 던지고 있다.
넌 누군가와 단절하고 있지 않니?
2022년 9월 29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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