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러외교

이시후_ 2024. 8. 15. 09:00

초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한러 관계의 적신호가 드리워지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다각화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으며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안보 균형을 위한 제삼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주요 국가이다. 나아가 외교 정책의 수립 및 실행에 있어서 일관성은 국가 간 신뢰 확보와 그로써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기대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점에서 미루어, 대러외교에 대한 접근은 일정한 이론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이에 본고는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더불어 구조주의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선행한다. 각 이론을 기반으로 대러외교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러외교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접근법을 발견한다. 러-우 전쟁 이전의 극동 외교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과 한러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대러외교는 주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 협력을 통한 국가 간 상호 의존도 증대와 이로 인한 안보 확보를 추구하였고, 북한 문제에 있어서 다자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요구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 러-우 전쟁 이후 한러 외교 관계는 보다 신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약화되고, 동맹과 양극화를 통한 세력 균형 및 경쟁이 주요 현상으로 나타난 점에서 그러하다.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러 관계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대러 외교에 있어서 한국이 자구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 진영 간의 경쟁이 지배적인 구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한국은 마치 어느 한 진영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에 봉착하게 되고,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서방 진영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체제는 과거의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체제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른바 신냉전은 신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다극 체제 하의 경쟁이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불안정한 체제는 안보상의 위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일방적인 편승외교 전략은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보다 중립적 위치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거나 새로운 극을 형성하여 또다른 세력권에서 세력균형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I. 서론

최근 북러정상회담이 성사되며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이 체결되었다. 과거 조소동맹조약이 폐기되고 불곰사업이 진행되며 한러 간 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로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한러관계의 적신호가 드리워지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경제 구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산유국이자 천연가스 등 천연 자원이 많은 국가로서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다각화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으며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안보 균형을 위한 제삼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주요 국가이다. 이러한 러시아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은 외교적 패착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현 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앞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수립하고, 나아가 대러외교의 긍정적 발전을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한편, 외교 정책의 수립 및 실행에 있어서 일관성은 국가 간 신뢰 확보와 그로써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기대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점에서 미루어, 대러외교에 대한 접근은 일정한 이론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이에 본고는 주류 국제정치 이론으로 평가되는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더불어 구조주의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선행한다. 각 이론을 기반으로 대러외교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러외교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접근법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는 단일 이론 혹은 여러 이론의 혼합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대러외교의 미래를 위한 용이한 분석을 제시할 것이다.

 

II. 이론적 배경

1. 신현실주의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및 계승으로서 1970년대 왈츠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정치 이론이다. 구조적 현실주의라고 불리는 신현실주의는 “구조의 개념화”가 국제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갖는 역할을 중시하였다(김태운, 2005). 이는 신현실주의가 전통적 현실주의 등 기존 국제정치 이론이 국제체제를 국가라는 단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환원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이때 구조는 왈츠의 정의에 따르면 “체제 내 단위들의 배열의 원리”, “기능의 분화 정도”, “단위들 간 능력의 배분”으로 구분되는데, 단위 간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ibid.). 

 

김태운(2005)은 신현실주의를 네 가지의 주요 특성으로 설명하는데, 첫째로 국제체제의 무정부성을 꼽을 수 있다. 국제체제의 구조는 체제의 기능을 위한 질서 내지 원칙과 같은 것이며 이 구조는 본질적으로 각 국가들을 규율할 권위가 부재한 무정부 상태라는 것이다(우정무, 2024). 이는 홉스가 전제하는 자연 상태와 유사하게, 각 국가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위협에 대한 타개는 오로지 개별 국가들의 몫이 된다. 즉, “자력구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체제에서 신현실주의는 그 수단으로서 전쟁과 무력 행사에 주목하고 이러한 외교 정책의 주요 행위자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김태운, 2005). 

 

두번째로,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를 각 국가의 외교에의 주요 변수로 간주한다. 이때 국가의 내부적 요소, 즉 “지도자의 성향”, “국내 정치 문화”, “경제 수준 및 환경”은 국가의 외교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ibid.). 이는 개별 국가들이 갖는 외교적 목표나 국익에 대한 관점이 기본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전제에 기인한다.

 

셋째, 각 국가가 추구하는 자력구제는 세력균형으로 실현된다. 이는 국가 간의 협상력이 균형을 이루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위협할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다. 세력균형의 실현은 경제·군사적 측면에서의 자국의 역량 강화 또는 제삼국과의 동맹 체결로써 이루어질 수 있으며 외교 전략의 본질이 된다(헨리 키신저, 1994). 또한 세력균형은 양극체제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때때로 세력균형 하에서도 불안정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현실주의는 개별 국가들 사이의 협력 가능성을 부정한다. 모든 국가들은 권력 및 영향력과 같은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상호 관계에서 절대적 이익은 필연적으로 상대국과 비교에서의 상대적 이익을 유발한다. 즉, 상대국이 협력 관계에서의 규칙을 준수하더라도, 불신과 비도덕이 본질적인 무정부적 국제체제에서 상대적 이익의 문제는 국가들의 협력을 소극적이게 만든다. 이에 국가 간 협력은 불가능하며 국제제도의 유용성은 부정된다.

 

 

2.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국제협력이론이라고도 불리며, 신현실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두되었다. 이 배경에는 특히 냉전 체제의 붕괴와 국제적인 긴장 완화 추세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와 함께 비정부기구나 다국적 기업과 같은 국가 이외의 주체들이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신현실주의의 전제가 흔들린 것과도 관련이 있다. 국가 간 상호의존이 강화되며 국가 간 협력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김태운(2005)은 신자유주의를 다음의 세 가지 특성으로 정리하였다. 첫째로, 신자유주의는 신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국제체제의 무정부성을 인정하지만 국가 간 협력 가능성을 긍정한다.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무정부 상태에서 부재하는 권위는 국가 간의 게임규칙을 규율하는 주체이며 이를 말미암아 국가 간 배반의 우려가 나타난다. 그러나 국가 간 협력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국제제도가 된다. 즉, 국제제도가 무정부 상태에서의 권위를 대리하여 규칙 위반자를 감시하거나 처벌할 수 있고, 이때 국제제도는 개별 국가 간의 상호적 관계로써 성립된다.

 

다음으로 국가 간 협력은 군사안보 분야에서보다 경제 분야에서 용이해진다. 이는 경제적 측면을 배제하는 신현실주의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신현실주의가 세력균형으로써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신자유주의는 국제 무역을 통한 상호 의존성의 확대로써 전쟁이 억지될 수 있다고 본다. 전쟁은 무역의 단절을 수반하기에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커질수록 전쟁 비용이 커지고, 이러한 경제적 취약성이 결과적으로 평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에서 위와 같은 협력을 촉진하는 것은 국제제도와 국제레짐이다. 이 둘은 “일관성을 유지한 가운데 상호 간에 연결되어 있는 규칙 또는 관행”으로 정의될 수 있다(ibid.). 특히 국제레짐은 “국가 간 특정 영역에서의 정책 결정 절차”로서, “행위자의 기대를 수렴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원칙들, 규범들, 규칙들, 정책결정자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되는데, 국가 간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ibid.). 국제레짐은 1) 규칙을 강제하고, 2) 정보 비용과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3) 정보 공유를 통해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세부 기능으로써 국가 간 협력이라는 핵심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3. 구조주의

한편, 구조주의는 위의 두 이론과는 상이한 양상을 보이는데,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현재의 국체체제를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관계를 설명하고자 한 것과 달리, 구조주의는 국체체제를 유동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념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구조주의는 보다 각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하고, 국가를 핵심적이며 필연적인 주체로 본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와는 달리 국가는 예외적으로 발전된 주체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본다.

 

신욱희(1998)는 이러한 구조주의의 특징은 하버마스와 기든스의 사회 이론에 기원함을 제시한다. 하버마스를 구조주의의 시초로 볼 때, 하버마스가 남긴 핵심 개념은 비강제적으로 합리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다(ibid.). 더하여 기든스의 사회 이론은 사회적 관습은 재귀적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이러한 구조는 행위자의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규칙으로써 형성됨과 동시에 변화한다고 가정한다.

 

구조주의를 국제정치 이론으로 편입한 웬트는 위 사회 이론을 근거로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조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개체(주로 국가)에 대한 환원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즉 개별 주체만큼이나 각 주체가 형성하는 상호작용, 이로써 구성된 국체제제의 구조와의 상호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오너프는 이에 더하여 상호작용을 규율하는 규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크라토크빌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언어와 규범, 규칙의 역할에서 국제정치를 이해할 때 규칙을 가장 중시하였다.

 

국제정치를 바라볼 때, 구조주의의 입장은 첫째로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규칙과 규칙으로써 발생하는 지배는 국제체제에서 “패권”과 “위계질서”, “타율성”으로 변주된다(ibid.). 오너프에 따르면 국제관계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는 모두 규칙으로써 구성되고, 이는 형식적으로 무정부적이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서 어떠한 권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즉, 일정한 권위로 나타나는 국가의 주권 또한 국가 간 상호작용과 합의에 있어서 필요조건이 되지 못하므로, 주권은 신현실주의나 신자유주의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필연적인 개념이 아니다.

 

또한 구조주의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내부적 요소를 보다 중시한다. 국제체제만을 고려에 포함시키며 국익만을 간주한 신현실주의와는 달리, 크라토크빌은 국익의 실현을 위해서는 공익을 통한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어떠한 정책이 공익과 상충할 때 그것은 국익에 부합하더라도 내부적인 반대를 직면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더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제정치는 주체와 규칙, 제도 간 상호작용으로써 재구성되고, 이는 웬트의 입장에서 정체성이 크게 관여하는 지점이다. 즉 개별 국가가 갖는 정체성에 따라 상호작용의 방식이 달라지고, 이를테면 주권에 대해 상이한 해석을 가진 국가들은 국익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익에 대한 관점을 비교적 동질적인 것으로 본 신현실주의와 대비됨과 동시에, 국제정치가 주체 간의 외재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체를 구성하는 요소 간의 내재적 상호작용에도 변수를 두고 있다는 데에서 둘 모두와 대비된다.

 

 

4.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구조주의 비교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구조주의가 대비되는 지점은 1) 무정부적 상태, 2) 주요 관심 분야, 3) 외교 정책, 4) 국제제도 및 국제레짐 등이 있다. 먼저 무정부적 상태에 대해 신현실주의는 국가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바라보지만 신자유주의는 신뢰의 부재로 간주하며, 구조주의는 형식적 측면에 불과함으로 일축한다. 또한 신현실주의는 국제 안보 등 “상위 정치” 분야에 집중하는 반면 신자유주의는 경제, 환경, 인권, 구조주의는 정체성 등 “하위정치” 분야에 집중한다.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신현실주의는 안보에, 신자유주의는 경제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신현실주의는 국제제도를 비관적으로 바라본 반면 신자유주의는 국제제도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국제 평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다.

 

III. 연구 방법

한러관계와 북러관계를 통찰하고,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대러외교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다. 이중 현 외교 상황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고 앞으로의 대응책 설계에 가장 효과적인 이론을 선정하고, 해당 이론을 바탕으로 대러외교의 미래를 고민해 본다.

 

IV. 연구 과정

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대러 외교

본디 소련은 한국보다는 북한의 우방국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한국과 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게 벌어짐에 따라 소련의 대외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친서방 정책을 타진한 소련은 1990년 들어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옐친 정부는 한국에 편중된 외교 정책을 이어갔다(고상두, 2018). 그러다 21세기 들어 푸틴 정부는 등거리 외교라는 개념과 함께 남북 간 정책 비중에서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 중심 체제에 성공적으로 합류하는 데 실패한 뒤, “극동 및 시베리아 개발에 역점”을 두게 되며 “남북러 삼각협력”의 필요성이 커진 데 비롯한다(idid.).

 

이와 함께 추진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한국의 “신북방정책”과 조응하여 크게 9-Bridge 전략, 즉 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하였다. 이에 박노벽(2019)은 1) “정부, 국회 등 고위급 인사 교류가 연이어 활발히 진행”되었고, 2) “그동안 위축되었던 한·러 간 교역과 인적 교류”가 증가하고 있고, 3) “9개 분야를 중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56개 중점 추진 과제들이 논의되고 있으며, 4) 문화교류와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활동들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더하여 한국은 위 협력을 촉진하고자 “동북아 다자협력 포럼을 개최하는 등 동북아 주요국과의 다자협력을 제도화”하여 “한반도 평화안보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의 경제 번영기반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보였다(고상두, 2018). 이에는 경제적 협력을 기반으로 군사안보적 이익을 확보한다는 시각이 엿보이는데, 안보적 요인으로 한러 협력이 자주 좌초하였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문제점이 보인다.

 

한러 외교에서의 안보적 문제는 크게 북한과 미국의 영향을 받아 왔다. 북핵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서 고상두(2018)는 “북한의 비핵화 유도를 위해 노력하지만 더 큰 우선순위를 북한 정권의 유지에 두고 있고, ... 핵 비확산 레짐의 주도 책임을 미국에게 떠넘기고, 핵확산 차단에 드는 비용의 부담을 회피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즉, 북한 문제에 있어서 극적인 충돌을 회피하고 북핵 문제에 있어서 북미·남북 관계의 연착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러시아는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한국이 동북아에서 외교안보적 자율성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고상두, 2018). 이는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어 러시아에게 적성국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으로, 대러 외교에 있어서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한국이 신북방정책을 천명하며 자율적 의지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우려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보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를 거부하며 다자 외교를 추구해왔다. 즉, 한반도 문제는 러시아가 포함된 6자회담으로써 논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북한의 체제는 “미국 이외 다른 강대국이 함께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러시아의 입장이다(ibid.). 

 

위와 같이 극동 외교에 있어서 러시아의 입장과 한러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대러외교는 주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 협력을 통한 국가 간 상호 의존도 증대와 이로 인한 안보 확보를 추구하였고, 북한 문제에 있어서 다자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요구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대러 외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러 관계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과거 크림반도 사태에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이번 러-우 전쟁에서 한국은 미국의 우방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및 대러 제재에 참여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의 지원을 모색하면서 북러 대 한미라는 이분법적 경쟁 구도가 가시화되고 한러 관계 또한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특히, 2023년 9월의 북러 정상회담은 북러 간 군사적 접촉 강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전후로 러시아에 대한 포탄 지원을 지속하였고,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이 제공하게 될 반대급부가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 위협이 커졌다(황일도, 2023).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러 갈등이 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 북방정책을 폐기하고 대러 제재 및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함에 따라 연착륙을 추구하던 기존 러시아의 “북러 관계 속도 조절 제어 장치”를 포기하고 “북중러 결속을 통해 제재 체제를 돌파하고, 대미 경제 다극화 체제를 확대 강화하겠다는 노선으로 전환한 것”이라는 평가 또한 이 맥락에서 해석될 것이다(성원용, 2024).

 

위와 같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러 외교 관계는 보다 신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약화되고, 동맹과 양극화를 통한 세력 균형 및 경쟁이 주요 현상으로 나타난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2024년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새로이 체결된 북러 조약은 이러한 경향을 강조한다.

 

V. 연구 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대러 외교는 신자유주의에서 신현실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볼 때, 앞으로의 대러 외교 또한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신현실주의를 중점으로 할 때, 어떻게 세력균형을 달성할 수 있고 대러 외교에서 어떻게 최대한의 국익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된다. 이점에서 먼저 러시아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장덕준(2020)은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러시아 연방은 글로벌 강대국을 추구해오고 있다. … 러시아는 강대국 건설에 필수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서방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하는 소위 ‘현실주의 강대국 외교’를 지향한다. … 그런데,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그러한 러시아의 입장을 존중하기보다는 유럽연합과 나토의 확대를 강행했다. …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와 팽창의 배후에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어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본다. 

비슷한 맥락에서 러시아는 옛 소련지역의 통합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왔다. …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에 비해 비중을 덜 두어왔던 아·태 지역과의 외교적 비중을 높이는 소위 ‘신동방정책’(Pivot to Asia)을 추구해오고 있다. … 러시아가 아·태지역과 동북아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보이익이다. … 둘째, 경제적 이익을 들 수 있다. … 셋째, 지정학적 이익 추구이다.”

 

즉,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극동 외교에 비교적 적극적이며 경제·안보적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우 전쟁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둘러싼 전반적 외교 상황에 적지 않은 변화를 유발하였는데, 성원용(2024)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러-우 전쟁의 특성을 정리할 때] 첫째,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촉발된 동서 내전의 확전이다. ... 둘째, NATO의 동진과 그에 따른 러시아의 안보 위협 인식이 ‘위기’를 촉발시켰다. ... 셋째, 글로벌 단위에서 서구-러시아 간 체제 대립의 위기로부터 촉발된 전쟁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세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 [미국은] 혹독한 제재 체제를 통해 이들의 부상 및 세력권 확장을 차단하고 범서방 진영의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단극적 자유주의 질서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경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러 외교에 있어서 한국이 자구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 진영 간의 경쟁이 지배적인 구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한국은 마치 어느 한 진영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에 봉착하게 되고,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서방 진영을, 북한은 러시아를 지원하며 러시아 진영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VI. 결론

그러나 흔히 신냉전으로 불리곤 하는 현재의 국제체제는 과거의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체제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과거의 냉전은 양극 체제에 가까웠고, 이는 신현실주의의 관점에서 안정된 체제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른바 신냉전은 다극 체제 하의 경쟁이고 보다 불안정하다.

 

불안정하다는 점은 안보 상의 위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즉 다양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과거 냉전 구도와 같이 각국이 미국와 소련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기 보단 다극적 체제 하에서 자신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여러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미루어 볼 때, 일방적으로 한 편에 편승하여 외교적 선택지를 줄이는 전략은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에 과한 의존을 보이며 러시아 및 중국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하기보다, 보다 중립적 위치에서 실리 외교를 펼치는 것이 최대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지금까지 한국 외교의 지향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고상두. (2018). 신북방시대 한국의 대러 외교전략과 과제. 슬라브학보, 33(4), 1-26.

김태운. (2005).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국제정치관. 정치정보연구, 8(2), 190-211.

박노벽. (2019). 대러시아 외교 추진경과와 향후과제. 계간 외교, (128), 43-52.

성원용. (2024). 북러 관계 변화의 동인과 북중러 삼각 체제 전망. 황해문화, 5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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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4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