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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과 '산(김광섭)'의 시민 의식

이시후_ 2024. 8. 9. 09:00

1965년 발표된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흔히 “사회에 대한 회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개인주의”라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류수열 외, 2024). 개인은 삭막한 ‘식민지의 거리’에서 홀로 단절되어갈 뿐이다.

 

한편, 작품의 창작적 배경을 4·19 혁명에서 찾은 한 연구가 눈에 띈다. 4·19 혁명과 함께 사회로 분출된 시민 의식에 대한 열망은 군부 독재와 함께 좌절되었고, 이러한 “미완의 이념형”이 작중 등장인물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류동규, 2024). 연구자는 작풍 등장인물들이 수동적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직면하고, 서로 연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즉, 시민 의식을 향한 여정에서 등장인물들은 “소시민적 한계”를 보여주며 “시민적 연대”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ibid.).

 

특히, 초반부 ‘나’와 ‘안’에 대화에서 나타나는 ‘꿈틀거림’에 대한 연구자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안’은 학생들의 데모에서 ‘꿈틀거림’을 발견한다. 연구자는 이것이 “여자의 아랫배”나 “욕망의 집결지”와 같이 “결이 다른” 은유와 함께 배치되면서 “냉소와 환멸”이 그려진다고 평가한다(ibid.). 더 깊이 해석해보자면, ‘안’이 사랑하는 학생들의 ‘꿈틀거림’은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여자의 아랫배’와 같이 소시민적인 요소로서 희석되고, 상호 간의 연대가 끊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즉, ‘서울 1964년 겨울’은 단순히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만연해진 개인주의와 파편화된 개인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 의식의 소실에 대한 안타까움, 더하여 시민적 연대를 열망하는 ‘사내’의 좌절로서 표상되는 환멸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김광섭의 ‘산’은 ‘산’의 모습에서 바림직한 시민 의식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968년 발표된 ‘산’은 ‘어수선’한 인간 사회 속에서도 인내와 겸허, 배려를 잃지 않는 ‘산’의 모습을 찬양하고 있다. 이는 ‘서울 1964년 겨울’ 속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행태와는 대비되어, ‘나’와 ‘안’이 결핍하고 있는 올바른 시민 의식의 가치가 될 것이다.

 

어쩌면 ‘안’이 사랑한 ‘꿈틀거림’은 김광섭이 사랑한 ‘산’과 중첩하여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안’의 ‘꿈틀거림’은 부정적 현실에 대한 환멸로서 좌절되었지만 김광섭의 ‘꿈틀거림’은 긍정적 현실을 향한 기대로서 달성된다. 만약 ‘안’이 ‘산’이 내포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면 ‘사내’의 요구에 부응하여 시민적 연대를 이룰 수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비슷한 시대의 현실을 다룬 두 작품의 차이에 주목하여, 파편화된 개인들의 환멸은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살 수 있는 ‘산’의 포용력을 받아들임으로써 해소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는 단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 그치지 않고, 2024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끊어진 시민적 연대를 봉합하는 데 꼭 필요한 절차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나’와 ‘안’이, 홀로 소외된 ‘사내’와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는 ‘산’이 지니는 시민 의식을 능동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류동규. (2024). 시민성 교육을 위한 김승옥 소설 읽기 - 「역사」(1964)·「서울 1964년 겨울」(1965)을 중심으로. 국어교육연구, 84, 263-289.

류수열 외 14명. (2024). 수능특강 국어영역 문학. 한국교육방송공사. 

 

2024년 7월 15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