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역사(力士)(김승옥): 새마을운동과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

이시후_ 2022. 12. 18. 13:30

"역사(力士)"는 김승옥이 1964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나'가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나'는 '창신동'의 허름한 집에서 하얀 회가 발라진 깨끗한 '양옥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양옥집에서의 규칙적이고 강제적이기까지 한 생활은 자유로운 삶을 그리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매일 규칙적으로 울려퍼지는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선율과 함께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양옥집의 생활을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처음에 나는 이 집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것이 처음 보는 경치에 보내는 감탄과 같은 성질의 것밖에는 되지 않음을 알았다. (...) 이 가족의 계획성 있는 움직임, 약간의 균열쯤은 금방 땜질해 버릴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는 전진적 태도, 무엇인가 창조해 내고 있다는 듯한 자부심이 만들어 준 그늘 없는 표정- 문화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희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지점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은 나의 그들에 대한 이해였다.
 그러나 그 어느 지점이 무한하게 먼 곳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이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나로 하여금 기타 켜는 시간의 제약까지를 주어 가면서 말이다. 차라리 이 사람들의 태도야말로 자신들은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매일매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의 그 끝없는 공전(空轉)같아 뵈던 생활이 이곳보다는 오히려 더 알찬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나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어느 쪽인가 한편이 틀려 있다는 생각이 나를 몹시 짓누르기 시작했다. 본질적으로는 두 쪽이 같지 않느냐는 의문이 나의 내부 한쪽에서 솟아나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를 끌고 가는 ‘어느 쪽인가 한편이 틀려 있다.’ 라는 집념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김승옥, 역사(力士), 1964년 발표.

 

양옥집의 가주인 '할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규칙을 규율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풍'이 흔들리지 않아야 가세가 기울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나'는 물론 가족 구성원 전체를 속박하는 압제자로서 등장한다. 분석에 따라 김승옥이 양옥집을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던 1960년대 당시의 대한민국으로, '할아버지'를 박정희 대통령으로 비유하며 산업화의 이면을 비판했다고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굿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당시 새마을운동과 "역사" 속 양옥집의 가치를 비교 분석한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공동의 관심사 해결을 위하여 권력 행사∙의견 제시∙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를 의미한다. 한편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고도 불리는 굿 거버넌스는 이에 더해서 "개발도상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으로써 굿 거버넌스는 경제적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추구하되, 부패를 최소화하고 소수자를 배려하며 책임 있는 행정을 도모한다.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8요소

굿 거버넌스는 8가지 요소로 분류된다. 각각 참여, 법치주의, 투명성, 반응성, 합의 지향, 형평성과 포용성, 효과성과 효율성, 그리고 책임성으로 구성된다.

 

 

 

새마을운동에서의 굿 거버넌스

 

 참여

새마을운동은 1971년에 마을당 연 216명이 참여하는데 그치지만 1978년에 이르러서는 7,424명까지 참여자가 불어난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총 투자액의 적게는 57%, 많게는 87% 가량을 부담하면서 상당한 주민 참여도를 보였다. 지역 주민의 적극적 참여는 정부가 효과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 관점에서 새마을운동에서의 '참여'는 적절히 이행되었다.

 

 효과성과 효율성

정부는 '우수마을 우선지원 원칙'을 내세우며 성취도가 우수한 마을에 보상을 제공했다. 이로써 마을간 경쟁을 유도하며 효율성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한편, 새마을운동 당시 의사결정이 각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와 이장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효과적인 중앙 통제와 함께 인근 마을과의 주도적 네트워킹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 따라 무리한 목표가 설정되고 실행 과정이 강압적으로 진행되기도 하면서 각 마을이 능동적인 행동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를 보였다. 또한, 농업이 시장화되면서 마을 단위 협력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었고, 결국 마을의 자발적 참여 및 협력과 행정체제 사이의 불균형을 낳았다.

 

 

 

양옥집(역사)에서의 굿 거버넌스

 

 참여

양옥집의 가족 구성원들은 할아버지의 규칙을 착실히 따른다. 그 누구도 불평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편 '나'는 할아버지가 설정한 '기타 치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 멋대로 기타를 치기도 하는 등 할아버지의 질서의 반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명성

할아버지는 '나'가 처음 양옥집으로 이사올 때 양옥집의 규칙의 의의와 목적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나는 내가 이사를 온 첫날 저녁, 할아버지 앞에 불려 나가서 들은 얘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몇 가지 나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 묻고 나서, 할아버지는 갑자기, 내가 6.25때는 몇 살이었느냐고 물었다. 정확한 나이는 얼른 계산이 되지 않아서, 열 살이었던가요하고 내가 우물쭈물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아마 그럴 거라고 하며 사변이 남겨 놓고 간 것이 무엇인 줄을 모르겠군 하고 말했다. (...) 그러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것은 가정의 파괴라고 한마디로 얘기했다. (...) 가풍(家風)이 없는 가정은 인간들의 모임이 아니다. 가풍이란 질서정신에 의해서 성립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정은 사변 때 식구들의 생사조차 서로 모를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더욱 가정의 귀중함을 알았지 않느냐. 그러니 질서정신에 입각해서 각기 가정은 가풍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하는 데 장애가 아주 많은 게 우리들의 처한 현실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자신들에게 엄격해야 한다. 대강 이런 것이었다. 
김승옥, 위의 책.

 

 합의 지향

할아버지는 독단적으로 양옥집의 질서를 규정한다. 가족 구성원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소설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적어도 '나'와는 민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형평성과 포용성

할아버지는 '나'에게 늦잠을 자거나 원하는 시간에 기타를 치는 등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며느리'에게는 할아버지가 피아노 소리를 싫어한다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다. 이는 할아버지의 목적이 가족 구성원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을 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가 표현하듯이 '규칙적인 생활 제일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효과성과 효율성

양옥집에서의 생활은 규칙적인 질서 하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간다. 이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목표 달성을 용이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매일매일 제자리 걸음을" 하는 "끝없는 공전"과 같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엄석진. 2011. "1970년대 농촌 새마을 운동의 재조명". 서울행정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464-482.

 

 

 

2022년 7월 10일 초안  |  2022년 12월 18일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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