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안전보장추진법…반도체 산업에 대한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 및 시사점

이시후_ 2023. 4. 11. 21:03

7일 일본 중의원에서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첨단기술 개발 및 보호 등을 골자로 한 경제안보법안이 찬성 다수로 가결됐다. © KITA 한국무역협회

미국의 연이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은 대중국 보호주의¹ 정책의 일환이다. 이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인식하였던 기존의 자유무역 체계²가 무너지며, 탈세계화의 흐름³과 함께 나타난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신뢰 가치사슬(TVC)로의 이동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위협으로 판단하여 대중국 디커플링 움직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고, 일본 또한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에 동조⁴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이하 경제안보) 전략의 일부로서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하 경제안보법)’을 제정하여 올해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⁵, 이달 한·일 정상회담 또한 한·일 경제교류 확대를 통한 경제안보 확보 전략 중 하나로 볼 여지가 있다.

 

본고에서는 경제안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본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알아볼 것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안보법 제정에 따른 우리나라의 대일본 경제 전략을 제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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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양희, 2023, p. 35.

2) 전현희, 2022, p. 97.

3) 김양희, 2023, p. 36.

4) 사공목, 2022, p. 71.

5) 최정환, 2023, p. 45.

 

I.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제정의 배경

1. 탈세계화와 미국 주도의 신뢰 가치사슬 

 

가치사슬(Value Chain)은 어떠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생산의 각 단계를 거쳐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데 참여하는 모든 활동을 통칭하는데,글로벌 가치사슬은 이 활동이 전세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생산이 구성되는 것⁶을 뜻한다. 즉, 국가 간의 무역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효율적 자원 배분이 실현될 때 글로벌 가치사슬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미·중 패권경쟁과 이로 인한 리쇼어링, 자국생산주의, 세계경제 블록화와,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리스크 확대와 같은 글로벌 리스크의 증대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연결 고리는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 특히, 이는 각국 정부가 경제를 외교적 우위를 점하여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 시작하며⁷ 글로벌 가치사슬에 자국의 경제를 맡기는 데 부담을 느낀 것에서 기인하였다.

 

미국은 자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움직임⁸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대중국 의존도 축소와 공급망 개편을 위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칩4(CHIP4) 동맹 추진 등의 신뢰 가치사슬 구축⁹ 시도로서 나타난다. 일본 또한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본이 미국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피력함과 동시에 자국의 외교적 위치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었다.

 

2. 국가 경쟁력 제고 및 국익 확보

© 도쿄AP, 교도 연합뉴스 / 필자 합성

일본은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의 두 가자 축을 바탕으로 한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하였는데, 전략적 자율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경제운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을, 전략적 불가결성은 글로벌 산업구조에서 일본 산업이 불가결한 분야를 확대하는 것¹⁰을 뜻한다. 일본은 상술한 글로벌 리스크의 증대로 인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중국 등 신흥국의 성장으로 인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 우려되자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립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공급망 재구축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¹¹, 국가 경제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하여¹² 경제안보법 제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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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은경, 2020, p. 2.

7) 사공목, 2022, p. 71.

8) 사공목, 2022, p. 71.

9) 김양희, 2023, pp. 35, 41-42.

10) 사공목, 2022, p. 72.

11) 사공목, 2022, p. 73.

12) 전현희, 2022, p. 91.

 

II. 경제안전보장추진법상 특정중요물자

1. 특정중요물자 지정 및 관리 체계

 

경제안보법은 크게 네 가지의 경제시책을 위한 법적 근거로 구성되는데, ‘특정중요물자의 안정적인 공급 확보’, ‘특정사회기반서비스의 안정적인 제공 확보’, ‘특정중요기술의 개발 지원’, ‘특허출원 비공개’가¹³ 그것이다. 

 

이중 특정중요물자는 ‘중요성’, ‘외부 의존성’, ‘공급 단절이 발생할 개연성’, ‘본 제도를 통한 조치의 필요성’의 네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재화로서 소관부처와 내각부가 여러 단계에 걸쳐 검토한 끝에 지정된다.¹⁴ 이렇게 지정된 특정중요물자는 특정중요물자의 공급을 시도하는 사업자가 공급 계획 주무대신에 제출하면 이를 승인하는 구조로 관리된다. 주무대신은 각종 특례 및 지원 조치를 결정하거나 사업자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공급망 관리를 추진할 수 있다.¹⁵

 

 

2. 특정중요물자로서 반도체 소자 및 집적 회로

상술한 절차를 거쳐 지정된 특수지정물자는 반도체 소자 및 집적 회로(이하 반도체)를 포함한 11개이다.¹⁶

 

특히 반도체의 경우 재료와 장비 분야에서 일본의 점유율 및 경쟁력이 높으나(<그림 1> 참고),¹⁷ 반도체 파운드리와 원료 부문의 약점이 대두되었다. 반도체 파운드리는 한국·대만 등에 크게 뒤졌고, 반도체 제조 원료인 황린과 희소 가스 등에 대한 해외 의존도도 상당한 수준이다.¹⁸ 즉, 반도체는 외부 의존성이 높은 부문이고 이로 인해 공급 단절이 발생할 취약성도 높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은 미국·유럽의 반도체법 제정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 경제에 중요한 부문이기에 특정중요물자로서 지정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 내각관방 / 필자 번역

특정중요물자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감독 하에 관리되는데, 반도체의 경우 TSMC 공장의 일본 내 유치, 미국 반도체 제조설비의 일본 내 유치 등을 통한 일본·미국·대만 간의 반도체 산업 내 협력을¹⁹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경제안보법을 포함한 경제안보 정책을 통해 2030년 자국 반도체 생산기업 매출 15조 엔을 기록할 것을²⁰ 목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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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최정환, 2023, p. 45.

14) 최정환, 2023, pp. 46-47.

15) 전현희, 2022, pp. 91-92.

16) 최정환, 2023, p. 49.

17) 사공목, 2022, p. 74.

18) 최정환, 2023, p. 49.

19) 사공목, 2022, p. 78.

20) 최정환, 2023, p. 49.

 

III.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전략

1.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법안

 

© 연합뉴스 / 필자 합성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안보 관련 법안으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이하 공급망 기본법안)’,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자원안보 특별법안)’ 등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공급망 기본법안은 수입 의존도가 높거나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제안보품목’을 대상으로 공급망 다변화, 생산 기반 지원, 기술개발 지원, 비축 및 관리 지원 등을 포함한다. 자원안보 특별법안 또한 국가경제적 가치가 큰 ‘핵심자원’에 대해 개발, 구매, 조달, 비축, 재자원화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²¹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법안 추진에 앞서 일본의 경제안보법 제정 선례는 여러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을 제공한다. 먼저, 관리 대상을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 특정중요물자를 명시한 일본의 경제안보법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법안은 대상 품목·자원을 추후 대통령령이나 산업통상부 장관령으로 정하고, 상세한 대응 방안은 추후 관계 기관의 계획에 따르게 되어 있다.²² 따라서 일본이 제시한 네 가지 지정 요건은 물론 대응 절차와 방안을 적절히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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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최정환, 2023, p. 51.

22) 최정환, 2023, pp. 51-52.

 

III. 시사점 

앞서, 일본이 경제안보법을 추진한 배경을 알아보며 대중국 디커플링과 미국 중심 신뢰 가치사슬 전환과 경제 블록화 등의 세계적 기류가 제정 배경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반도체를 특정중요물자로 지정한 것에 대해 알아보며, 일본이 반도체 산업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법안에 대해 알아보며 일본의 선례를 참고할 방안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경제안보법은 현재 국제적 정세에 대한 일본의 대응 전략을 엿보는 창구이자, 유사한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예시인 것이다. 경제안보법을 통해 우리나라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지금껏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전략은 일관적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에 가까웠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요소수 사태 등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나름의 대응 방식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일관된 대응 체계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일본 수출규제와 미국 등의 대중국 규제로 인해 단일 국가에 대한 높은 공급 의존도가 가지는 위험성을 절감했음에도, 대대적인 외부 의존도 대응 방책이 드러나지 않은 점도 한계점이다.

 

일본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관적이고 통일된 외교·경제 정책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법안으로 제정한 것이다. 글로벌 리스크가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처럼 경제적 행동을 각 기업의 자율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경제안보법에 따라 주요한 전략물자를 관리하고, 시장 개입의 기본 방침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관된 정책의 시행 방침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일관되지 않은 전략은 시장에 혼란을 줄 뿐더러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경제안보 관련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해당 법안이 전략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반도체·2차 전지·자동차 등 수입·가공 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공급망 충격에 따른 위험성이 크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중국을 배척하는 세계적 기류와도 알맞지 않다. 점차 경중안미의 논리나 경제적 실리 외교가 작동하기 어려워질 것이이다. 따라서 공급망의 다각화는 물론 수출 고객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대안은 일본이나, 일본의 수출규제나 화이트리스트 지위 박탈 등의 전례를 고려할 때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도 또하나의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서로간의 경제적 교류 확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2회 한·일신산업무역회에서 양국의 경제인과 관계 공무원이 의견 교류를 한 일이나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확실한 우방국으로서 중국에 비해 외교적 리스크가 적다. 일본을 우리나라의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공급망 리스크를 덜어 줄 적절한 아군이 될 것이다.

 

또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정치·외교적 관점에서도 이익이 크다. 대중국 의존도를 어느 정도 덜어낸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중국 외교에서 고자세를 취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일본을 통해 대중국 의존도를 덜어낸다면 비교적 중국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교역량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안이 될 수 없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교류와 더불어 우리나라 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을 인용하자면, 앞선 전략적 자율성과는 대비되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비롯하여 강점을 가지는 산업 부문의 대한 시장 지배력을 확립함과 동시에 비교적 취약한 산업 부문에 대한 개발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IV. 참고문헌

김양희. (2023).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 한국 경제안보 전략 모색. 황해문화, 118, 35-53.

사공목. (2022). 일본의 경제안보법 제정 경위와 함의. 월간 KIET 산업경제, 282, 70-83.

전은경. (2020). 글로벌 가치사슬 동향과 향후 과제. 의회외교 동향과 분석, 47.

전현희. (2022). 일본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의 주요 내용과 우리의 대응 과제. 월간 KIET 산업경제, 283, 88-99.

최정환. (2023). 일본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통한 특정중요물자 선정 현황 및 시사점. 월간 KIET 산업경제, 292, 44-53.

 

2023년 4월 1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