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비판은 발전하는 정치를 만든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2012.

조백헌 원장은 강력한 권력를 쥔 채로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원생들의 희생이 동반된다. 그러나 이청준은 조 원장에게 설득력을 부여한다. 조 원장은 항희백 장로의 말에서 언급되듯이 진정성을 갖고 소록도를 위해 헌신한다. 

 

원장은 그래도 하느라고 했거든. 지금 와서 보면 원장이 이 섬에서 행해온 것은 모두가 사랑으로 해서였던 게란 말야. … 이 황량한 문둥이들의 가슴속에 원장은 그래도 제법 훈훈한 사랑을 보여주려 했거든.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2012. p.397.

 

그는 전임의 주정수 원장과 달리 명예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성적 판단 하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축구단을 구성하고 장로회의 의견을 묻고, 철책을 없애는 등 원생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힘쓴다. 폭력과 강제 또한 없다. 그는 강직한 군인이면서도 섬세한 인간이고, 물리적 억압 대신 논리적 설득을 이뤄낸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그의 목표가 정당화될 수 있을 때 일어나는 평가이다.

 

 

외재적 동상

 

소설의 제1부와 2부에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의 동상에 대한 담론이 펼쳐진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대립, 진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인물과 비판적이고 개인적인 인물과의 대립이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끊임없이 조 원장의 신념을 의심하고 비판한다. 이 과장이 지적한 것은 그의 동상이다. 그것은 주정수 원장이 세운 공명심의 동상으로부터 연유되어 섬에 뿌리깊게 잔재하는 배반의 상징으로 언급된다. 이 과장은 그의 목표가 결국 섬을 위한 것이 아닌, 그가 품고 있는 명예욕에 기반한 것이라 여긴다. 결국 그것은 섬에 대한 또다른 배반인 것이다. 

 

이에 조 원장은 이 과장의 비판을 행동으로서 묵살시킨다. 그는 끊임없이 '나는 주정수 원장이 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원장직을 수행한다. 여기서 그는 섬의 지배자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내비친다. 그는 인내와 믿음을 원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이 과장의 비판은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향한다. 

 

 

내재적 동상

 

제3부에 들어서 조 원장과 이 과장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 조 원장은 이 과장이 남긴 편지를 통해서, 이 과장은 조 원장의 연설을 엿들으며 서로의 입장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이 과장의 편지는 겉으로 존재하는 공명심의 동상이 아닌, 원생들에 깊이 내재되는 억압의 동상을 말한다. 조 원장은 이 과장의 편지를 풀어나가면서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둘의 입장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이는 모든 비판과 응답의 시작이 되는 섬과 원생에 대한 정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 원장은 섬을 하나의 주체로 여긴다. 그의 입장에서 섬과 원생들은 결국 같은 것이다. 이는 부임 첫날 발생한 탈출사고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원생들의 탈출을 섬의 문제라고 생각하여 섬의 환경을 바꾸려고 한다. 섬과 원생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에 섬을 바꾸기 위해 원생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단 운영과 오마도 간척 사업과 같은 것은 끝내 목표를 이뤄낸다. 

 

이처럼 그의 전체주의적 관점은 섬을 '문둥이들의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의 강력한 무기가 되며 결코 그의 믿음은 부정될 수 없다. 천국의 섬은 곧 원생들의 천국이 되는 것이고, 섬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모든 긍정적 영향은 그대로 원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천국에 대한 원생들의 반대를 이해할 수 없다. 섬의 미래, 즉 원생들 자신의 미래를 위한 그의 헌신에 반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배반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는 원생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희생은 그에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미래가 온전히 희생하는 주체를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주민들의 존재를 선동의 도구로 삼아 원생들을 겁주고 자극하기까지 한다.

 

반면 이 과장에게 섬과 원생들은 같은 운명을 지닐 뿐, 구분된 주체이다. 그래서 천국의 섬이 곧 원생들의 지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원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여기고, 그들의 인간이고자 하는 욕구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존중한다. 그에 따라 전체주의적인 관점에서 씌여진 조 원장의 계획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처참히 짓밟는 억압의 동상이 되는 것이다.

 

원장님께서 섬 위에 이룩하시고자 하신 천국이 가까워오면 올수록 이 섬은 그 원장님의 단 하나의 명분에 일사불란하게 묶여버린 얼굴 없는 유령 집단의 섬이 되어갈 뿐입니다. 하여 점점 더 다스리기가 쉬운, 그러나 개개인의 삶을 찾을 수 없는 생기 없는 유령들의 섬이 되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아마 원하기만 하신다면 원장님께서는 끝끝내 이 섬을 그렇게 만들어놓으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이청준, 위의 책, p.464. 

 

이 과장은 "원장님의 천국은 이룩될 수도 없으며, 이룩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하고, 조 원장이 꿈꾸는 천국에 모습 하에 원생들이 종속되는 것은 그들이 인간인 이상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룩될 수 없는 조 원장의 천국은, 천국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뜨거운지에 관계없이 잘못된 신념에서 설정된 목표이다. 이 과장에게 섬에서의 탈출 사건과 같은 것은 원생들이 그들의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기 위한 존엄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 과장은 그것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조 원장의 계획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판단의 유보

 

조 원장은 끝내 이 과장의 뜻을 읽지 못한 채 섬에서 자신의 계획을 행해간다. 하나의 과정으로서 소개된 음성병력자 윤해원과 건강인 서미연과의 결혼에 앞서 그는 홀로 연설을 위한 예행연습을 한다. 

 

하지만 오늘 이 두 사람이 우리 앞에 이어놓은 마음의 방둑은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숱한 편견과 무지한 인습의 파도를 견뎌 이기기에는 너무도 힘이 약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 방둑이 다시금 험상궂은 거파들에 휩쓸려나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힘을 보태나가야 할 것입니다. … 그렇게 함으로써 저 오마도에 버려진 우리의 둑길도 영원히 우리들의 것으로 지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청준, 위의 책, p.494-495.

 

그러나 이 연설 또한 이 과장의 지적에는 못미치고 있으며, 여전히 섬과 원생들을 동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장의 비판은 확실히 조 원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원생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선 곧 같은 운명을 지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 기반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과장이 의도한 성찰은 아니겠으나, 분명히 조 원장은 이 과장의 비판을 통해 반성했고 발전했다.

 

이야기가 확실한 끝맺음 없이 끝나며, 조 원장과 이 과장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에게 남겨진다. 그리고 그 평가는 사람에 따라 확연히 갈릴 것에 틀림없다. 사회 전체를 위한다는 정책에 대한 이면을 지적하는 개인적인 비판이 엿보인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의 조 원장과 이 과장의 대립과 갈등은 곧 우리 사회의 정치 모습과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는 끊임없는 비판의 연속이다. 작중의 두 인물은 결국 타협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비판을 통해 성찰하고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은 위와 같은 상호보완적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비판 대신 비난이 득세하고, 건설적인 지적보다 감정적인 폭로가 지지를 얻는다.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선 생산적이고 올바른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장이 조 원장에게 이끌어낸 변화처럼, 비판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의 방향은 앞으로 나아감에 틀림없다. 이제, 서로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무시를 그만두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성적인 비판을 통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2022년 6월 2일

© 이시후 (keepedia06@gmail.com)